스리랑카 | [김세형 칼럼] 시진핑 한국에 무례발언 못하게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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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지은 작성일21-01-02 13:53 조회7,23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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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형 칼럼] 시진핑 중국주석은 지난주(10월23일) 6·25전쟁의 성격을 "美(미)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승리"라고 연설했다.북한은 "미제(美帝)와 이승만 도배들이 도발한 침략전쟁"이라고 선전매체(우리끼리)를 동원해 거들었다.중국, 북한은 왜 지금 6·25전쟁을 말하는가.그 이유는 강남왁싱중공군이 최초로 미군에 맞딱뜨려 승리한 운산전투가 10월 25일이고 이 시점이 중국공산당 전체회의(제19기 중앙위원회 5차 전체회의)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다.문재인 대통령은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그런데 시진핑, 김정은 등은 한국을 팔랑개비처럼 흔드는 차원을 넘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리는 모욕감을 느끼는 국민이 않을 것이다.저런 北中의 태도를 보고도 문대통령은 한마디 말도 없고, 장관들(강경화 외교, 서욱 국방)도 국회에 불려나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6·25전쟁은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주로 일어난 것으로 시주석의 발언에 동의할 수 없다"는 정도만 말할 뿐이다. 참 분개할 2020년 10월의 풍경이다.6·25전쟁의 기원은 러시아의 기밀해제로 전말이 명확하게 밝혀져 있고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 방문시 옐친 대통령이 건네준 1급 비밀문서에는 "6·25전쟁을 일으킨 주범은 북한 김일성이다"고 명백하게 기록돼 있다.미국작가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이 모든 기밀서류들을 다 분석해서 쓴 '한국전쟁의 감추어진 역사'(The Coldest Winter)를 보면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을 1949년 방문해 "총검으로 남한을 찔러보고 싶다"고 남침 야욕을 밝힌게 출발점이다. 스탈린은 당시 미국참전을 우려해 부정적이었다.마오쩌둥이 1949년 10월 중국에서 장개석을 몰아내고 혁명에 통일을 달성하자 김일성은 더욱 몸이 달아 스탈린을 재촉한다.1950년 1월 12일 미국 애치슨 국방장관이 내셔널프레스클럽 연설에서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한반도를 제외한다"고 발언하자 스탈린은 비로소 1월 30일 "소련은 남침을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고 김일성에게 전하라"고 북한주재 소련 장군 슈티코프에 타전한다.김일성은 스탈린의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 남침을 감행하기 두 핀페시아달 전 모스크바로 1950년 4월 10~25일 보름간 찾아가 스탈린을 세번 만났다.스탈린은 "(소련은) 유럽이 우선이어서 (김일성이) 남침시 곤경에 빠져도 하나도 도와주지 않겠다"면서 "모든 지원 요청은 마오쩌둥에게 하라"고 말했다.김일성은 5월 13일 마오를 베이징에서 만나 비밀회담을 하고 스탈린의 뜻을 확인한 마오는 "미국이 참전하는 경우에만 북중 접경지역에 파병해 주겠다"고 약속한다.김일성은 스탈린에게 약속했으므로 마오쩌둥을 만나준다는 식으로 아랫사람 대하듯 거만하게 굴어 마오는 정나미가 떨어졌다.김일성은 "중국군은 필요없다. 3주 이내에 이승만의 남한을 쓸어버릴텐데 미군은 개입할 시간조차 없을 것"이라며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7개사단 9만명이 휩쓸고 내려왔다.미군 정보부는 남침정보를 보고했으나 일본에 체류하는 맥아더는 무시했다.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군, 한국군은 전혀 기미조차 차리지 못하고 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6시30분에 보고받았으며 미국에 8시에 알려줬다.미국의 트루먼은 닷새 후인 6월 30일새벽 5시에 한국전 대구출장안마참전을 승인했는데 그것은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라 한국의 공산화를 방치하면 전세계 공산화 도미노가 일어나고 3차대전으로 연결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내전경험이 풍부한 장개석 군대의 한국파견을 주장하는 견해가 많았다.스탈린과 마오쩌둥은 '미군참전' 오판을 깨닫고 후회 했으며 김일성이 장담한 3주가 경과하자 망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며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공군 개입을 한다고 공갈치기 시작했다.천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제외하면 70살이 넘은 맥아더는 시종 무능했으며 자신을 워싱턴 링컨과 동급으로 여겨 트루먼을 얕보고 지시도 안들었다.51년 4월 트루먼이 맥아더를 파면한 이후 총사령관이 된 매튜 릿지웨이 장군이 처음부터 한국전쟁을 맡았더라면 승리했을 것이다. 릿지웨이는 단 두달만에 무너져내리던 전선을 회복시켰다. 평양점령후 중국에 휴전을 제의했더라면 중공군 참전명분도 없었을 테고 그후 관리에 따라 통일이 가능했으리란 분석도 있다.이 장면들을 보면 강경화·서욱 장관이 "6·25전쟁을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사주를 받아 김일성이 남침한 것"이라고 국회 답변때마다 앵무새처럼 말하는게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것이다.6·25전쟁은 스탈린, 마오쩌둥의 사주가 아닌, 김일성 작사 작곡이 맞다.김일성은 소련군이 평양에 진주해 처음 데려왔을 때만 해도, 연설 솜씨도 풋내기고 내용도 형편없어 "저런 촌뜨기가 있나"며 무시당했는데 3년만에 스탈린을 흉내내 철권으로 북한정권을 구축한 것이다.국내에서 중국문제에 관해 최고봉인 박명림교수, 김명섭교수(전쟁과 평화- 6·25전쟁과 정전체제탄생 저자), 이희옥교수 등은 1992년 한중수교때 중국에게 한반도 침략에 대한 사과를 받았어야 한다고 말한다. 6·25전쟁에서 중공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김일성은 궤멸됐을 것이고 웹사이트 상위노출한반도는 1951년경 통일돼 지금쯤 인구도 1억명쯤 되고, 경제적으로 일본보다 부강한 나라가 돼 있을 수도 있었다. 한반도 허리가 두동강이 난 분단체제는 그때 끝났을 것이다. 그 꿈을 앗아간 장본인이 중국이고 한민족에게 천추의 한을 남긴 장본인이다.시진핑이 미제침략에 암보험비교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를 송두리째 왜곡하고 한국의 입장은 전혀 개의치 않은 뻔뻔스러운 어린이보험비교발언이다.6·25전쟁은 스탈린-마오쩌둥 -김일성이 한반도를 적화하기 위한 기획 침략전쟁 이었다. 모택동은 최종 6·25참전을 정하는 순간 러시아의 공군폭격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주은래를 스탈린에게 파견했는데 스탈린은 "공군지원은 불가하다"고 냉랭하게 차버렸다. 미국과 전쟁을 우려해서였다.그럼에도 모택동이 참전을 결행한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대만 장개석과 함께 다시 미국이 본토로 쳐들어올까봐 걱정해서였다.중국이 북한이 이뻐서 도운 것 아니라는 점은 미국이 남한이 이뻐서 참전한 게 아니라는 점과 대칭적이다.한국 통일의 꿈은 그렇게 마오쩌둥에 의해 무너져 내렸다.한국은 주권국가로서의 정체성 확립 차원에서 이에 대한 중국측의 진정한 사과와 입장정리를 반드시 받고 넘어가야 한다.대개 전쟁을 했던 상대방과는 국교를 재개할때 총 결산을 하고 넘어가는게 국제관례로 돼있다. 한일간에도 12년간의 협상을 거쳐 1965년 수교이전에 청구권협정으로 피해보상을 받아 문제를 매듭지은게 그런 사례다.이희옥 교수는 "한중수교 당시 중국은 천안문사태 이후 국제적 고립과 아랍의 봄 혁명기운 등으로 한국보다 사정이 급했다. 우리가 요구하면 뭐든 할 수 있었는데 노태우정권 말기에 북방정책 업적에 쫓겨 아무런 사과요구 없이 서둘러 수교를 맺어 첫 단추를 잘 못 낀 것"이라고 말한다.시진핑은 2017년 4월 6,7일 미국 순방시 마러라고에서 회담하면서 "역사 속에서 한국은 중국의 일부"라고 발언한 사실이 트럼프의 입을 통해 터져 나왔다.한국이 중국의 예속국이란 말이다.그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은 중국 방문시 시진핑과 회담에서 이에 대한 사실 규명을 요구하기는커녕 12월 15일 베이징대 연설에서 "중국은 우뚝 선 산봉우리"라고 치켜세웠다.그러니 시진핑의 한국 무시는 사드보복, 한국제품 불매운동, 동북공정 등 등 거칠게 없다.우한 코라나19가 터져 중국행 비행기 입국거부 조치를 가장 눈치본 게 한국이다.이제 2년후면 한중수교 30주년이 된다.미국대선이 끝나면 미중간 충돌은 더욱 격화될수도 있다. 그 틈바구니에서 한국은 명확한 자기입장을 가지고 똑바로 자신의 주체성을 갖고 가야한다.시진핑이 6.25전쟁을 왜곡한 발언에도 한국정부가 따지지 않으니까 네티즌들은 "일본이 그런 주장을 했더라면 죽창가가 나오고 야단 법석이 났을 것"이라는 비판했다.박교수는 "시진핑의 발언에 주한중국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해 혼내고 야단쳤어야 옳았다"고 지적한다.일본 총리가 한일합방을 한국과 전립선염합의했다는 식으로 발언했더라면 어땠겠는가. 중국엔 설설기고 일본엔 사사건건 부딪히는 건 국제사회가 한국을 우습게 볼 것이다.언제까지 시진핑의 중국이 한국을 호주머니 속 사탕처럼 제멋대로 취급하게끔 놔누고선 "아무도 흔들수 없는 나라"라고 하는건 코미디다.그러니 WTO 의장국에 한국이 출마해도 빈약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2년후 한중도 30주년 수교를 맞아 한중관계는 분명한 재정립이 필요하다.시진핑이 서울 답방을 할 경우 6·25전쟁 참화로 한국에 끼친 재앙에 대해 진지한 사과를 받아낼 수원중고차필요가 있다.한국이 중국의 일부라는 발언을 정말 했는지, 캐묻고 사과를 받아야 민족정기가 바로 설 것이다. 그러면 코워커김정은도 경거망동 않고 한국을 다시 볼 것이다.[김세형 고문]▶ 볼보, 신차 10대 30m 높이에서 낙하시킨 이유▶ 아시아나 인수포기했던 실버암보험HDC현산 지금 기분 어떨까?▶ 김근식, 국민의힘 비꼰 정청래에 "무식한 소리…동네 양아치도 아니고"▶ 정치하는엄마들 "공무원 vs 일반 노동자…육아휴직 차별"▶ 정은경 "코로나 감염력 1 넘어…2∼4주후 300∼400명 발생 가능"[매일경제 모바일 서비스 | 페이스북] [매일경제 구독신청] [오늘의 매일경제][ⓒ 매일경제 & mk.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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